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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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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왕조 굽타 왕조 (गुप्त राजवंश: Gupta Empire) 작성일 19-04-12
시기

3세기 중후반 ~ 550년 추정

수도

파탈리푸트라(現 비하르 주도인 '파트나')

주요왕들

● 찬드라굽타1세(Chandragupta I) – 319 ~ 335/350 ● 사무드라굽타(Samudragupta) – 335/350 ~375 ● 찬드라굽타 2세(Chandragupta II) – 380 ~ 413/415 ● 꾸마르굽타 1세(Kumaragupta I) – 415~455 ● 스칸다굽타(Skandagupta) - 455~467

29개주

비하르 주

왕조약사

1. 약사 굽타 왕조(गुप्त राजवंश, Gupta Empire)의 확립 배경은 분명하진 않으나, 3세기 중엽 쿠샨(Kushan) 왕조의 세력이 쇠퇴하면서 영토 대부분을 소실하고 그 자리에 신흥 중소국들이 난립하는 혼란의 시대에 접어든 시기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굽타 왕조의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던 최초의 통치자는 가톳까차(Ghatotkacha)의 아들 찬드라굽타 1세(Chandragupta I)였다. 마가다 지역(現 비하르 주)의 유력한 영주(領主)였던 찬드라굽타 1세는 수도를 파탈리푸트라(Pataliputra)에 두고 13개의 군소 왕국을 병합하여 지배 영역을 확장시켰다.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선진적인 행정 체계를 확립했다. 또한 이 시기에 절대적인 권한의 왕위와 세습적인 형태를 취하는 왕정체제가 확립되었다. 이후 그의 후계자인 사무드라굽타(Samudragupta)가 20여개의 왕국들을 차례로 복속시켜 갠지스 강 상류와 그 이남지역까지 정복하며 북인도 대부분의 영토를 장악하였다. 그러나 정복한 시역의 지배자들로부터 충성을 맹세 받은 후에는 그들의 영토 지배를 사실상 묵인, 제후(諸侯)들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지방 분권적인 봉건제도를 기반으로 정치하였다. 중앙집권제와 봉건번국제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선진적 관료 제도를 받아들였다. 사무드라굽타의 후계자인 찬드라굽타 2세(Chandragupta II) 또한 유능한 통치자로서 계속적인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과 외교적 방법들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직접적인 통치 외에도 여러 속국들에 조공을 받아 사실상 전인도아대륙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왕조였다. 특히 인도 북서부의 지배자였던 사카족을 완전히 정복하여 아라비아해의 제해권을 손에 넣고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와 활발한 교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매우 번성하였다. 당시 발행된 굽타 왕조의 주화들을 통해 당시 제국의 번영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찬드라굽타 2세의 아들 쿠마라굽타 1세(Kumaragupta I) 역시 이를 계승하여 1세기 이상에 걸친 전성기를 누렸다. 비록 즉위년도인 415년부터 중앙아시아 훈족의 일파인 에프탈족(Hephthalites)이 인도 서북방에서 침입해왔으나 수비를 잘하여 제국을 평화롭게 지켜냈다. 그의 아들인 스칸다굽타(Skandagupta)가 즉위하고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에프탈족의 침입에 대비했으나 잦은 침입과 전쟁, 그리고 이를 틈타 굽타 왕조에 종속해 있던 속국이 독립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굽타 왕조의 인도 내 영향력이 약화되기 시작한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친 외침과 더불어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내분이 심화되며 굽타 왕조는 결국 6세기 중엽 멸망한다. 2. 문화 굽타 왕조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서 인도 역사상 힌두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 만큼 인도의 민족주의적 성격이 드러나는 고유문화가 번영하였다. 종래의 제식주의와 희생제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던 브라만교의 세력이 약화되자 보다 세속적인 형태로 변화하여 현재 힌두교(Hinduism)로 칭하는 고유의 종교 및 철학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힌두교는 이 시기에 기본적인 체계를 완전히 갖추었으며 불교, 자이나교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종교 형태로 발전하여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까지 퍼져나갔다. 굽타 왕조의 왕들은 왕권 강화를 위해 힌두교를 강력하게 숭상하였으나 불교를 보호하고자 하는 등 타종교에도 관대했다. 불교의 학문적, 교리적 연구는 계속되어 5세기 경 쿠마라굽타 1세에 의해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날란다의 불교 대학(Nalanda University)이 설립되기도 했다. 또한,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산스크리트어 문학이 발전을 거듭하였다. 왕실 소속의 학자와 문학가들이 구전설화를 정리한 것이 오늘날의 인도 2대 서사시로 잘 알려진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이다. 당대 저명한 산스크리트어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칼리다사(Kalidasa)를 궁정시인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고 <사쿤탈라>, <메카투사>와 같은 훌륭한 작품들이 편찬되었다. 3. 유적 인도 미술사에서 굽타 양식은 4세기 초엽부터 7세기 중엽까지 계속되었으며, 불교 미술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불교의 네 군데 중요한 성지 중 하나인 보드가야(Bodh Gaya)에 있는 마하보디 사원(Mahabodi Temple)이 이 무렵에 조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강력한 왕권 아래 힌두교의 부흥으로 힌두교의 조형 미술도 이 시기부터 등장하여 다양한 석조 사원과 조각 장식, 벽화 등이 남아있다. 굽타 양식으로 널리 알려진 유적 중 아잔타, 엘리펀트 섬, 엘로라의 석굴들은(the caves at Ajanta, Elephant, and Ellora)은 당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의 조화로운 공존을 반영한다. 대표적인 조각으로는 5세기 초 마투라 양식과 우다야기리 석굴(Udayagiri caves)의 조각, 5세기 말의 사르나트 싱의 조상 등이 있다. 벽화로는 아잔타 석굴의 벽화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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