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화살표

역사

왕조 짤루끼야 왕조(ಚಾಲುಕ್ಯ, Chalukya dynasty) 2 작성일 19-04-25
시기

543년 ~ 753년

수도

바다미(현재 인도 카르나타카 주 도시)

주요왕들

<초대 짤루끼야(바다미 짤루끼야) 왕조의 왕> ● 풀라케신 1세 - 543년 ~ 566년 ● 키르티바르만 1세 – 566년 ~ 597년 ● 만가레샤 – 597년 ~ 609년 ● 풀라케신 2세 – 609년 ~ 642년(642년 수도 바다미 함락으로 한동안 공위) ● 비크라마디트야 1세 – 655년 ~ 680년 ● 비나야디트야 – 680년 ~ 696년 ● 비자야디트야 – 696년 ~ 733년 ● 비크라마디트야 2세 - 733년 ~ 746년 ● 키르티바르만 2세 – 746년 ~ 753년

29개주

카르나타카 주

왕조약사

2) 칼야니 짤루끼야(서 짤루끼야) 짤루끼야 왕조는 라슈트라쿠타의 지배하에 200년을 견디고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 왕조의 계승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의 여지가 있다. 한 가지 가설은 현대의 문학과 비문에서 나타나는 증거- 서 짤루끼야가 초대 짤루끼야의 칭호와 이름을 사용-를 바탕으로, 서짤루키야가 바다미 짤루끼야를 계승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에 또다른 서 짤루끼야의 비문은 그들이 초대 짤루끼야와 관련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타일라파 2세(Tailapa II)는 카르카 2세(Karka II)를 전복시키고, 서부 데칸에 짤루끼야의 통치기반을 세워 짤루끼야 제국의 대부분을 되찾았다. 서 짤루끼야는 200년 이상 존속했으며 촐라 왕조, 그리고 같은 짤루끼야 왕조를 이은 동부 벵기 짤루끼야와 끊임없이 대립하였다. 비크라마디트야 6세(Vikramaditya VI)는 서 짤루끼야 왕조의 가장 주목할 만한 통치자로 널리 여겨진다. 통치기간은 50년이었으며 재위 초기 지속되어온 연호(사카 연대)를 폐지하고 새로 비크라마 시대를 제창하였다. 이후 대부분의 짤루끼야 문장의 날짜는 새로운 연호로 시작한다. 또한 비크라마디트야 6세는 야심차고 숙련된 군사 지도자였다. 그의 지휘 아래 서 짤루끼야는 벵기에 미치던 촐라왕조의 영향을 종식시키고 데칸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서 짤루끼야 시대는 칸나다(Kannada) 문학과 산스크리트(Sanskrit) 문학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이다. 12세기 말, 호이살라 제국(Hoysala Empire), 판디야스 왕조( the Pandyas) 카카티야 왕조(the Kakatiya), 수나야다바스(the Seuna Yadavas of Devagiri) 왕조 등의 등장으로 서짤루끼야는 멸망하게 되었다. 3) 벵기 짤루끼야(동 짤루끼야) 풀라케신 2세(Pulakeshin II)는 616년 현재의 안드라프라데시 해안가에 해당하는 동부 데칸을 정복하여 비슈누쿤디나(Vishnukundina) 왕국의 잔당을 물리쳤다. 그는 621년 형 쿠바자 비슈누바르다나(Kubja Vishnuvardhana)를 총독으로 임명했다. 풀라케신 2세가 죽은 후, 벵기 총독령은 독립왕국으로 발전하였으며, 여기에 넬로레(Nellore)와 비사하카파트남(Visakhapatnam) 사이의 지역 역시 포함되었다. 8세기 중반, 바다미 짤루끼야 제국이 멸망한 후, 서부 데칸의 새로운 통치자인 라슈트라쿠타스와 동 짤루끼야 사이에 영토 분쟁이 불붙었다. 그 후 2세기 동안 동 짤루끼야는 라슈트라쿠타스에게 굴복해야했다. 비자야디트야 2세(Vijayaditya II) 치세 하(808–847)의 짧은 군사적 성공의 경우나, 비마 1세(Bhima I)의 통치기간(892–921)에만 독립성을 유지할수 있었으며, 비마 1세의 서거 이후 동짤루끼야는 또다시 라슈트라쿠타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동 짤루끼야의 운명은 1000년경에 뒤바뀌게 되었다. 동 짤루끼야의 다나르나바 왕은 973년 뗄루구의 조다 왕에 의해 전사하였다. 이때 다나르나바 왕의 두 아들은 촐라왕국으로 피신하였다. 동 짤루끼야의 초다 비마 왕이 촐라왕국의 국경지대인 톤다이만달람(Tondaimandalam)을 침공하다가 전장에서 사망하자, 촐라왕국과 동 짤루끼야 관계가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비록 촐라왕국의 라자라자 촐라 1세(Rajaraja Chola I)의 지배아래 놓여 있었지만, 다나르나바의 장남인 사크티바르만 1세(Saktivarman I)는 1000년에 동 짤루끼야, 벵기 짤루끼야의 통치자로 등극했다. 촐라와 동 짤루끼야의 이러한 새로운 관계는 그때까지 라슈트라쿠타의 지배력 아래 있었던 서 짤루끼야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서 짤루끼야는 지속적으로 벵기 지역에서의 촐라왕조의 영향력을 억누르려고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동 짤루끼야는 칸나다어와 문학을 장려하였으나, 어느정도 시기가 지나면서 지역적인 요인들로 인해 뗄루구 언어가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뗄루구 문학은 동 짤루끼야 시대에 발달하게 되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