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화살표

역사

왕조 팔라바 왕조 (पल्लव वंश; Pallava Dynasty)1 작성일 19-04-26
시기

275~897년

수도

칸치푸람(Kanchipuram), 인도 타밀나두주 북쪽에 있는 도시

주요왕들

군주제(200s–800s) Vishnugopa II Simhavarman III 심하비슈누(Simhavishnu) : 570~600년 마헨드라바르만 1세(Mahendravarman I) : 600~630년 나라심하바르만 1세(Narasimhavarman I) : 630~668년 마헨드라바르만 2세(Mahendravarman II) : 668~670년 파라미스바라바르만 1세(Paramesvaravarman I) : 670~695년 나라심하바르만 2세(Narasimhavarman II) : 700~728년 파라미스바라바르만 2세(Paramesvaravarman II) : 728~731년 난디바르만 2세(Nandivarman II) : 731~795년 단티바르만(Dantivarman) : 795~846년 난디바르만 3세(Nandivarman III) : 846~869년 아파라지타(Aparajitavarman) : 880~897년

29개주

타밀 나두 주

왕조약사

1. 개요 중세의 가장 중요한 왕조였던 팔라바 왕조는 인도 남부의 일부를 275~897년까지 지배했던 인도 왕조였다. 팔라바 왕조는 마헨드라바르만 1세와 나라심하바르만 1세의 통치 기간 동안 강국이 되었으며, 9세기 초까지 텔루구와 타밀의 북쪽 지역을 약 600년간 지배하였다. 인도 타밀나두 주의 칸치푸람(Kanchipuram)에 수도를 두었던 팔라바 왕조는 문화의 예술의 다양한 발전과 힌두이즘의 흥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그로 인해 북인도의 아리아인 문화를 남부에 전파하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인도 역사상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 역사 350~750년까지 남인도는 역사적으로 두 번째 전환기를 맞이한다. 기원전 200년경부터 300년경까지의 첫 번째 기간 동안 남인도는 아쇼카 왕의 통일제국하에서 점차 북인도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남인도 지역은 데칸 고원 지역의 사타바하나 왕조와 타밀 지역의 촐라, 판드야, 체라의 세 왕국으로 크게 양분되면서 각자의 영역을 지켜왔다. 이 가운데 인도 최남단에 위치했던 세 왕국은 오랫동안 끊임없는 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처음에는 촐라 왕국이, 다음으로는 판드야 왕국이 마지막으로는 체라 왕국이 교대로 패권을 차지했다. 이들 남인도 지역에 거대한 제국을 형성 했던 팔라바 왕조였고, 이에 반해 데칸 지역의 사타바하나 왕조는 찰루캬 왕조가 그 뒤를 잇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두 나라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사타바하나 왕조가 몰락한 이후 인도의 남동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팔라바인들은 스스로 왕국을 세우고 수도를 칸치푸람에 정했다. 팔라바 왕국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으며, 학자들마다 주장을 달리하고 있다. 팔라바 왕조가 역사의 전면에 분명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 3세기 중엽 시바스칸다 바르만 시대부터이다. 팔라바 왕조의 본격적인 흥기는 6세기 후반 심하비슈누 왕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팔라바 왕조의 역사는 프라크리트어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산스크리트어와 타밀어의 혼합 순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이 타밀어가 아닌 프라크리트어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북인도의 아리아인 문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입증한다. 실제로 당시의 기록은 왕들이 베다의 의식을 거행했다고 전한다. 심하비슈누(Simhavishnu, 570~600년)는 팔라바 왕조의 본격적인 기반을 이룬 첫 번째 왕으로서, 정통의 힌두교도였던 그는 힌두이즘을 거부한 칼라바족을 포함해 다수의 적들을 무찌르고 촐라만달람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 결과 왕국의 영토는 카베리 강과 크리슈나 강 사이의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아버지 심하비슈누의 뒤를 이은 마헨드라바르만 1세의(600~630년) 치세 기간부터 사타바하나 왕조의 뒤를 이어 데칸 지역을 지배하던 찰루캬 왕조와의 대를 이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시인이며 음악가이기도 했던 마헨드라바르만은 학문과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트리치노폴리, 발람, 마헨드라바디 등에 시바와 비슈누신을 위한 사원들을 세우기도 하였다. 마헨드라바르만의 후계자는 나라심하바르만 1세(630–668년)로 마말라(Mamalla)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 기간 동안 팔라바 왕조의 주요 항구였던 마하발리푸람은 중요한 교역 중심지가 되어 이곳으로부터 팔라바의 문화적 영향이 남동아시아와 인도차이나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인도 미술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유명한 석굴이 마하발리푸람에 세워졌다. 한편, 난디바르만 2세 이후 팔라바 왕국은 계속해서 이웃 나라들의 공격을 받으며 점차 영토와 힘을 잃어버렸다. 그러다가 880년 아파라지타 왕 때에는 촐라 왕국의 아디트야 1세의 도움으로 간신히 판드야 왕국의 침략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촐라의 왕 아디트야 1세는 아파라지타를 살해하고 대신 왕국을 차지해 버렸다. 결국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팔라바 왕국은 893년 촐라 왕국에 의해 멸망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