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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왕조 야다바 왕조(यादव वंश; Yadava Dynasty) 작성일 19-05-23
시기

850-1334

수도

데바기리(Devagiri, 현 다울라타바드)

주요왕들

Feudatories ·Dridhaprahara, r. c. 860-880 ·Seunachandra, r. c. 880-900 ·Dhadiyappa I, r. c. 900-? ·Bhillama I, r. c. 925 ·Rajugi, r. c. ?–950 ·Vaddiga, r. c. 950-970 ·Dhadiyasa, r. c. 970-985 ·Bhillama II, r. c. 985-1005 ·Vesugi I, r. c. 1005–1025 ·Bhillama III, r. c. 1025–? ·Vesugi II alias Vaddiga or Yadugi, r. c. ?-1050 ·Seunachandra II, r. c. 1050-1085 ·Airammadeva or Erammadeva, r. c. 1085-1105 ·Simhana I (also transliterated as Singhana I) alias Simharaja, r. c. 1105-1120 ·Obscure rulers, r. c. 1120-1145 ·Mallugi I, r. c. 1145-1160 ·Amaragangeya ·Amara-mallugi alias Mallugi II ·Kaliya-ballala, r. c. ?-1175 ·Bhillama V, r. c. 1175–1187 Sovereigns ·Bhillama V, r. c. 1187–1191 ·Jaitugi I, r. c. 1191-1200 or 1191-1210 ·Simhana II, r. c. 1200-1246 or 1210-1246 ·Krishna alias Kannara, r. c. 1246–1261 ·Mahadeva, r.c. 1261–1270 ·Ammana, r. c. 1270 ·Ramachandra alias Ramadeva, r. c. 1271–1308 Khalji tributaries ·Ramachandra, r. c. 1308–1311 ·Simhana III alias Shankaradeva, r. c. 1311-1313 ·Harapaladeva, r. c. 1313–1317

29개주

마하라슈트라 주

왕조약사

1. 약사 서(西) 찰루키아 왕조를 대체해 850-1334년까지 인도의 북서 데칸을 지배하였던 왕조로써 산스크리트어로 세우나(सेऊण, Seuna) 왕조라고도 불린다. 야다바는 세우나 스스로 고대 야다바족의 후손을 자처해서 야다바 왕조라는 별칭이 붙은 것이고, 사실 세우나가 원래의 국명이다. 야다바 왕조의 통치 지역은 현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북쪽 카르나타카 주, 마디야 프라데쉬 주의 일부를 포함한 퉁가바드라(Tungabhadra) 강에서 나르마다(Narmada) 강을 포함한다. 야다바 왕조의 수도는 데바기리(Devagiri)로, 이는 현재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다울라타바드(Daulatabad)이다. 2. 역사 야다바 왕조의 선조는 라슈트라쿠타 왕조(王朝) 및 서(西) 찰루키아 왕조에 종속해서 약 30년간 봄베이 주 북동부를 지배하다가 서찰루키아 왕조가 쇠퇴하자 빌라마 5세가 (재위 l187∼1191) 그 영역의 태반을 차지하여 데바기리에 도읍을 정하고 왕국을 세운다. 야다바 왕조는 심하바 2세에 가장 정점을 찍었으며, 14세기 델리 술탄 왕국에 병합되었던 14세기 초기까지 번영을 이루었다. 당시 야다바 왕조는 델리의 이슬람 세력에 맞설 수 있는 국가였으나 1270년에 카타키야 왕조와 동 강가의 협공으로 데칸 동부를 상실했고 1289년 동 강가는 카타키야에 데칸 중동부를 점령한다. 1290년에는 벵골 서부와 갠지스 남안까지 진출한 동 강가는 칼링가 왕국 이후 오랜만에 오리사 지방 기반의 강국으로 성장하여 야다바 왕조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이에 야다바 왕조는 남진하던 델리 술탄 왕조(킬지)와 동맹을 맺었고 1311년 남인도 원정군에게 정남가도를 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1312년 인도 중북부의 파라마라 왕조 멸망 시에 델리 술탄 왕조와 그 영토를 분할 점령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인 1313년, 델리 술탄 군대는 야다바의 북서부를 유린했고, 1314년에는 서부를 점령하며 마두라이까지 원정군을 보냈다. 1315년에는 서부 산간의 마지막 저항마저 일소되었고 1316년에는 중북부, 1317년에는 데칸의 중심부마저 함락되며 멸망하게 된다. 한편, 야다바 왕조는 마라티(Marathi)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최초의 주요 왕조였다. 기존에는 현 마하라수트라 주의 공식 비문에 산스크리트어(Sanskrit)와 칸다나어(Kannada)가 사용되었었는데, 야다바 통치자들의 노력으로 부분적으로 마라티어가 통치 지역의 지배적인 공식 언어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이 시기에 일부 학자들은 통치자들의 지원을 받아 마라티 초기 문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3. 유적 1) 다울라타바드 요새 (Daulatabad Fort or Devagiri Fort) 아우랑가바드에서 약 16km 북서쪽으로 떨어져있는 12세기 인도의 요새이다. 다울라타바드는 ‘번영의 도시’(City of Prosperity)란 뜻이며, 옛 이름인 ‘데바기리 요새’(Devagiri Fort)라고도 불린다. 야다바 왕조의 빌라마 5세(재위 1185∼1193?)가 찰루키아왕조로부터 독립하여 성을 축조하고 도읍하였으며, 이후 요새는 여러 데칸 왕조를 거치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 된 중세 시대의 요새 중 하나인 다울라타바드 요새는 현재에도 바위산을 도려내어 축조한 거대한 성채와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는 성벽이 남아 이전에 번성하였던 위상을 보여준다. 요새에는 정상의 바라다리(Baradari) 까지 7개의 방어선과 비밀스러운 비밀통로가 존재하며, 약 40피트 깊이의 해자와 5km상당의 튼튼한 암벽은 적으로부터 요새를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 2) 찬드 미나르(Chand Minar) 다울라타바드 요새 내부에는 인도 남부의 인도-이슬람 건축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표본으로 간주되는 페르시아 양식의 ‘달의 탑’(Tower of the Moon)이라는 뜻의 찬드 미나르(Chand Minar) 탑이 존재한다. 이는 성채를 점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445년 알라 우드- 딘 바흐마니(Ala-ud-din Bahmani) 왕이 델리의 꾸뜹 미나르(Qutb Minar)에 영감을 얻어 세운 탑이다. 탑은 30미터 높이로 4층과 24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페르시안 파란색 타일로 덮여있는 탑 아래쪽에는 작은 모스크또는 기도실(Praying Hall)이 존재한다. 탑 내부의 발코니를 지지하는 버팀대는 인도 고유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30미터 높이로 인해 요새 내부 모든 곳에서 탑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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