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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왕조 까까티야 왕조 (Kakatiya Dynasty) 작성일 19-05-27
시기

1163(?) ~ 1323

수도

오루갈루(Orugallu) 現 와랑갈(Warangal. 텔렝가나 州)

주요왕들

국왕 - 봉건사회 (Feudatory chiefs) Nripa Venna(800 ~ 815) Gunda I (815 ~ ?) Gunda II (? ~ 865) Gunda III (900년 이전 추정) Nripati Gunda IV alias Pindi-Gunda (955 ~ 995) Nripati Beta I alias Garuda Beta (996 ~ 1051) Prola I (1052 ~ 1076) Beta II alias Tribhuvanamalla (1076 ~ 1108) Tribhuvanamalla Durgaraja (1108 ~ 1116) Prola II (1116 ~ 1157) 국왕 - 군주국가 (Sovereign rulers) Rudra (1158 ~ 1195) Mahadeva (1195 ~ 1199) Ganapati (1199 ~ 1262) Rudrama Devi (1261 ~ 1289) Prataparudra II (1289 ~ 1323)

29개주

안드라 프라데시 주

왕조약사

1. 약사 까까티야 왕조는 現 인도 남동부 텔렝가나 州의 와랑갈을 도읍으로 과거 안드라 프라데시 州에서 1163년부터 1323년까지 번영했던 왕조이다. 초기에는 서부 데칸에 있던 찰루키아 왕조의 복속되어 있다가 12세기 중엽 찰루키아 왕조의 세력이 쇠퇴하여지자 당시 통치자였던 프롤라 2세(Prola II)가 남부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독립하였다. 그의 후계자였던 루드라(Rudra)는 고다바리 삼각주까지 왕국을 북쪽으로 확장시켰다. 다음 통치자였던 마하데바는 해안 지역까지 진출하였다. 그 후 13세기 가나파티 왕 시대가 최성기로서 찰루키아왕조 대신에 일어난 야다바 왕조 ·호이살라 왕조, 또 남방의 판디야 왕조 등과 세력을 다투어가며 쇠망해가는 촐라 왕조의 땅으로 진출하여 지배권이 칸치프람에까지 미쳤다. 특히 텔루구 지역의 통합을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가나파티 왕에게는 아들이 없어 그의 딸 루드라마(Rudrama)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13세기 말에는 마르코 폴로가 모투파트리항(港)을 방문하여 그녀의 통치와 성격에 찬사를 보냈으며, 왕조의 번영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310년 북인도에서 일어난 이슬람정권 할지 왕조의 원정대에게 수도 와랑갈이 함락당하고, 이어서 1323년 투글루크 왕조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였다. 2. 사회 까까티야 비문에서 당시 왕조의 넓은 범위의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다. 카스트 제도의 중요성이 낮게 인식되며 까까티야 왕조의 역대 통치자조차도 한 명의 예외를 두고 수드라 계급인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직업이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왔으나 까까티야 비문은 사람들이 출생에 의해 직업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농민 계층의 성장은 과거 유목민이었던 많은 부족민들을 포함했다. 또한 정권과 군대의 연계는 까까티야 왕조 시대의 중요한 특징이었는데, 농민들을 군대에 모집하여 전사 계급을 창출하고 사회적으로 이동시키며 왕조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3. 문화 및 유산 까까티야 왕조에서 주목할 만한 유산으로는 관개를 위한 고지대의 저수지 건설이다. 약 5000개의 저수지가 건설되었으며, 특히 건조한 기후의 지역의 개발 가능성을 높였다. 까까티야 왕조의 통치자들은 예술과 문학 발전에 큰 후원을 했다. 특히 산스크리트어를 장려함으로써 산스크리트 문학이 부활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종교 예술 번영에도 큰 역할을 하였는데, 통치 기간 동안 Chalukyan 양식의 사원 건축이 절정에 달했다. 인도 북부와 남부 양식을 혼합한 완벽한 사례로 일컬어지는 시바 신의 사원을 건립하기도 했다. 하남콘다(Hanamkonda)에 위치한 1000개의 기둥을 가진 사원(Thousand pillared temple)이라 불리는 힌두 사원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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